AI 시대의 생존 공식 - 언러닝, 리러닝, 뉴러닝
Series: 회고
회고contains 1
들어가며
요즘 개발을 하다 보면 예전과는 확실히 다른 감각을 느끼게 된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얼마나 빠르게 바뀌는 것을 따라가느냐?'가 더 중요해진 느낌이다. 특히 AI가 등장하면서 이 변화는 더 극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단순 반복 작업이나 정형화된 문제 해결은 점점 AI가 대신하게 되었고, 인간에게 요구되는 역할도 자연스럽게 달라지고 있다. 얼어붙은 채용 시장 속에서 채용 공고만 보더라도 기본적으로 AI 도구 활용 능력이 포함되어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 가지 질문이 생긴다.
'나는 앞으로 무엇을 공부해야 하고,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1. AI의 문제점
AI가 강력한 도구라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존재는 아니다. 실제로 개발 과정에서 AI를 사용하다 보면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요구받는 순간들이 있다. 특히, AI를 활용해서 코드를 작성하다 보면, 분명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틀린 코드를 만들어내는 경우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할루시네이션이다. 문제는 이 결과가 너무 자연스럽게 보인다는 점이다. 문법적으로도 맞고, 구조도 깔끔하며, 심지어 주석까지 친절하게 달려 있는 경우도 많다.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의심 없이 받아들이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 실행해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코드가 아예 동작하지 않거나 특정 조건에서만 잘못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더 위험한 경우는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정상적으로 보이지만, 특정 케이스에서만 문제가 되는 코드이다. 이런 경우는 테스트를 충분히 하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고, 그대로 운영 환경까지 흘러갈 가능성도 있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있다. 미국의 컴퓨터 과학자 Peter Norvig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개발자의 절반은 평균 이하다. 그러니 LLM이 생성하는 코드의 절반도 평균 이하다'
이 말은 단순히 AI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을 꽤 정확하게 짚고 있다. AI는 어디까지나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서 그럴듯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도구이기 때문에 그 결과 역시 완벽할 수는 없다. 결국 AI가 만들어내는 결과물도 확률적인 산출물일 뿐 정답이 보장된 결과는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하나다. AI는 틀릴 수 있다는 사실보다, 틀린 결과를 너무 그럴듯하게 만들어낸다는 점이 더 위험하다. 이 특성 때문에, 개발자는 단순히 코드를 받아쓰는 역할이 아니라, 그 코드가 맞는지 판단하고 검증하는 역할을 반드시 수행해야 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가 만들어낸 결과 자체가 아니라, 그 결과를 해석하고 검증하는 사람의 역할이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서,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 생긴다.
'어쩌면 나도 평균 이하에 속할 수도 있겠다'
이 생각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오히려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AI의 한계를 인식하는 순간, 동시에 자신의 판단 기준을 더 명확하게 가져야 한다는 필요성도 함께 느껴졌기 때문이다.
2. 그래서 필요한 것
AI를 쓰면서 느낀 건 단순히 '편하다'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생각보다 더 많은 판단을 요구받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생각이 떠올랐다.
'적어도 평균 이하에 속하지 않으려면 옳고 그름을 명확하게 분간할 줄 아는 제대로 된 학습을 해야겠다'
예전에는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그보다 '지금 알고 있는 것이 맞는지 판단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해진 것 같다. AI는 계속해서 답을 만들어낸다. 문제는 그 답이 맞는지 틀린지를 판단하는 기준은 여전히 사람에게 있다는 점이다. 결국 기준이 없다면, 아무리 많은 정보를 받아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다. 이 생각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연히 유튜브에서 이런 키워드를 보게 되었다.
언러닝, 리러닝, 뉴러닝
처음에는 단순한 자기계발 용어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AI를 사용하면서 겪었던 경험들과 묘하게 맞닿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무엇을 더 배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다시 배우고, 무엇을 새롭게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흐름이 지금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1. 언러닝(Unlearning) — 이미 알고 있는 것을 버리는 것
보통 학습이라고 하면 새로운 지식을 쌓는 과정을 떠올린다. 더 많이 알고, 더 많이 익히는 것이 성장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언러닝은 그 반대에서 시작한다. 지금까지 맞다고 생각했던 것들,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것들을 한 번 의심해보고 필요에 따라 버리는 과정이다. 언러닝은 단순히 기존 지식을 버리는 행위가 아니다. 오히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가?'를 스스로 검증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 검증을 거친 뒤,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내려놓는 것, 그게 언러닝이라고 생각한다.
AI를 사용하면서 이 과정을 더 자주 경험하게 된다. 예전에는 한 번 검증된 방식이 있으면, 크게 고민하지 않고 반복해서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익숙하고, 안정적이고, 이미 검증되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한 선택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AI는 기존에 내가 사용하던 방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을 계속 제안한다. 어떤 것은 낯설고, 어떤 것은 직관적으로 이해되지 않기도 한다. 그래서 처음에는 오히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막상 비교해보면, 간혹 더 간결하거나 더 효율적인 경우도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기존 방식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새로운 선택지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익숙함이 기준이 되어버리는 순간 더 나은 방법이 있어도 선택하지 않게 된다. 결국 이미 알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선택을 막는 요소가 되는 순간이 생긴다.
그래서 언러닝은 '버리는 것' 이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들이다.
- 이 방식이 지금도 최선인가?
-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아직도 유효한가?
- 단순히 익숙하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 질문을 멈추는 순간 경험은 자산이 아니라 한계가 되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는 '경험 많은 개발자'가 아니라 '과거 방식에 머물러 있는 개발자'가 되어버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러닝은 이러한 상태로부터 스스로를 검증하고 정리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인 것 같다.
2. 리러닝(Relearning) — 다시 배우는 것
언러닝이 기존의 것을 내려놓는 과정이라면, 리러닝은 그 자리에 다시 채워 넣는 과정이다. 다만,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개념을 다른 관점에서 다시 이해하는 과정에 가깝다.
예전에는 HTTP, 네트워크, OS 같은 개념들이 다소 이론적인 영역처럼 느껴졌던 적이 있다. 시험을 위해 공부하고, 개념을 외우고, 어느 정도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게 어디에 쓰이는지까지 깊게 연결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최근 몇 년 전에 작성한 블로그 글을 다시 보면서, 잘못된 내용이나 얕은 수준으로 작성된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글을 하나씩 정리하고, 기술을 다시 검증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흥미로운 흐름을 느끼게 되었다. 특정 기술을 깊게 파고들다 보면 결국 네트워크, OS와 같은 더 근본적인 개념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알고 있던 내용을 다시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동작 원리와 연결된 상태로 다시 마주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를 느끼게 된다. 예전에 학습했던 내용이 틀렸던 것이 아니라 그때는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있는 경험과 맥락이 부족했던 것뿐이라는 점이다. 약간의 경험이 쌓인 이후에 같은 개념을 다시 보면 이해되는 깊이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느낀다. 예전에는 '이런 게 있구나', '이렇게 활용되는구나' 정도의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그래서 이렇게 동작하는구나'로 연결된다.
리러닝은 단순한 복습이 아니다. 같은 내용을 다시 보는 것이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레벨로 이해를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 보면 하나의 패턴이 보인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보다, 기존 개념을 더 깊게 이해하는 것이 훨씬 오래 남고 더 넓게 활용된다는 점이다. 결국 리러닝은 지식을 늘리는 과정이라기보다, 이해를 정교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3. 뉴러닝(New Learning) — 완전히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것
AI 시대에서는 새로운 것을 계속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데 이때 중요한 건 '무엇을 배우느냐'보다 '어떻게 배우느냐'라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는 어떤 기술을 배우고, 어떤 지식을 더 많이 알고 있는지가 중요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무엇을 공부할 것인가'에 집중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그 질문 자체가 조금 바뀌고 있다. 단순히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 아니라, 그걸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가가 더 중요해진 느낌이다. 이걸 조금 다르게 표현해보면 이런 차이인 것 같다.
- 무엇을 배우느냐 → 정해진 것을 따라가는 방식
- 어떻게 배우느냐 → 스스로 방향을 설정하는 방식
과거에는 정보를 찾고 정리하는 능력이 중요한 경쟁력이었다. 필요한 자료를 빠르게 찾고, 정리해서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차별화가 가능했다. 하지만 지금은 AI가 그 역할을 상당 부분 대신하고 있기 때문에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는 정보를 찾는 것보다 그 정보를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판단하는 능력이 더 중요해졌다. 그래서 요즘 더 중요해졌다고 느끼는 능력은 이런 것들이다.
- 문제를 제대로 정의하는 능력
- 상황에 맞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
-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판단하는 능력
AI는 답을 만들어주지만, 그 답이 맞는지, 쓸 수 있는지, 지금 상황에 적절한지 등의 판단은 결국 사람이 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뉴러닝의 의미가 드러난다. 뉴러닝은 단순히 새로운 기술이나 도구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어떤 맥락에서 사용해야 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제는 '이 기술을 알아야 한다'는 접근보다 '이 기술을 언제, 왜 사용해야 하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 같다. 결국 뉴러닝은 지식을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식을 다루는 방식 자체를 바꾸는 과정이라고 보는 게 더 맞는 것 같다.
4.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
언러닝, 리러닝, 뉴러닝, 이 세 가지를 놓고 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계속해서 바뀐다는 점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빠르게 따라갈 수 있는가에 집중한다. 새로운 기술이 나오면 빠르게 익히고, 새로운 흐름이 생기면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쫓아간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놓치기 쉬운 부분이 있다.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다. 아무리 빠르게 움직이더라도 방향이 잘못되어 있으면 결국 원하는 지점에 도달할 수 없다. 오히려 더 빠르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수도 있다. 이때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세 가지다.
- 무엇을 버릴 것인지 → 언러닝
- 무엇을 다시 이해할 것인지 → 리러닝
- 무엇을 새롭게 받아들일 것인지 → 뉴러닝
이 세 가지를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다면 학습은 계속되더라도 축적되지 않는 것 같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방향 없이 흩어지는 지식만 쌓이게 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배우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다시 이해할 것이며, 무엇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인 것 같다.
마치며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과연 맞는가?'라는 질문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고, 이전에 알고 있던 개념들을 하나씩 다시 정리해보고 있다. 특히, 지금은 기억 속에서 많이 흐릿해져버린 학부 시절의 개념들부터 시작해서 기초적인 내용이나 조금 더 본질적인 부분들을 중심으로 다시 점검해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이해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갔던 내용들도 다시 들여다보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과정이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주지는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해진 것 같다.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기 전에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확인하는 과정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아마 최근에 접한 언러닝, 리러닝, 뉴러닝이라는 흐름도 결국 같은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 같다. 무엇을 더 배울 것인가보다, 무엇을 의심하고, 무엇을 다시 이해하고, 무엇을 받아들일 것인가를 고민하는 과정. 당분간은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스스로를 계속 점검해볼 생각이다.